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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단상

이 블로그는 주로
세상일에 대한 불평불만이나
앞으로 공부해보고자 하는 주제들을
단편적으로 기록해두기 위한 공간입니다.

Note: I have rights not to serve any visitor.

박지원 의원 단상

친목왕_박지원.jpg

박지원 의원 이야기가 나오니 옛날 생각이 나서 적는다.

내가 첫번째 유학을 떠났을 때가 박지원 의원이 한국에 들어와 대변인인가 보좌역인가 했을 때였다. 
그때 유학와 있던 모모 전 대통령 측근의 2세가 박지원 의원을 비웃었었다. 
미국에서 수퍼마켓 하던 사람이... 정계에 뛰어들었다고.

나는 박지원 의원이 수퍼마켓을 하던 사람인지 사업을 하던 사람인지 잘 모르지만 
수퍼마켓 했으면 정계에 뛰어들지 못하란 법은 또 뭐란 말이냐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미국에 와서 보니 수퍼마켓이나 요식업체 대박 나면 제법 부자가 되더라.
뉴욕 한인회장까지 했다는 건 제법 사업이 잘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한인회장 중에서도 시카고, LA, 뉴욕 한인회장의 힘이 유독 세다고 알고 있다. 
사업에 성공했든 취직해서 자리잡았든 미국 생활은 트랙에 올라서면 한국과 또 다른 안온함을 즐길 수 있다. 
일단 자식들도 경쟁에 덜 찌들어 자라는 게 보인다. 교포 젊은이들 얼굴을 보면 버터냄새 난다고 하는데 그게 바로 그거다.

이런 사람이 뭣 때문에 한국에 들어와서 정계에 뛰어들었을까.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끌어왔다는 게 정설이고
여기저기 취재나 회고를 보면 박지원 의원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
한국의 근현대사는 왜 이리 슬픈 일이 많으냐고 물어보아 대화가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몇시간에 걸쳐 한국 현대사에 대해 집중 강의를 했고, 이에 박지원 의원이 깊이 감화되었다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은 신동아의 기사와, 뉴스위크 한국판 (중앙일보사 출판) 기사에서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동아의 기사를 발췌하면 이렇다.

박수석이 김대중 대통령과 처음 만난 때는 지난 83년, 당시 김대통령은 사실상 ‘망명객’ 신분으로 워싱턴에 머물고 있을 무렵이었다. 박수석은 성공한 재미사업가이자 뉴욕한인회장 겸 미주총연합회 회장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81년에는 미국을 방문한 전두환 전대통령의 교민환영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5공시절 청와대를 두 차례나 방문하기도 했고 전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박수석과 5공 정권을 이어준 사람은 전경환씨였다. 두 사람은 전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전경환씨가 선발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한인회장 자격으로 만난 것이 계기가 됐는데, 그 후에도 두 사람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박수석과 김대통령 사이에 가교 구실을 한 사람은 김경재 현 민주당 의원. 김의원과 박수석은 동갑내기 친구로 절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는데 김의원은 ‘독립신문’이라는 반정부 성향의 교포신문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 친구 사이로 지내던 김경재씨가 ‘선생님’을 만나볼 것을 권했다. 박수석은 5공정권과 가깝게 지낸 전력 탓에 몇 차례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씨의 집요한 설득에 못이겨 함께 당시 워싱턴DC에 살던 DJ를 찾아갔다.


박수석은 자신의 자서전 ‘넥타이를 잘 매는 남자’에서 김대통령과 자신의 첫만남을 ‘운명적 만남’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선생님(DJ)과 나는 서로의 시국관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그냥 듣고만 있지는 않았다. 때로 내 생각과 다를 땐 반론도 펴고 하다보니 제법 열띤 토론이 되었다. …두 시간여의 토론 동안 나도 많은 생각을 얘기했지만, 결국 그때까지의 내 삶과 생각이 크게 잘못됐음을 선생님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선생님은 주로 시국에 관해 말씀하셨는데 해방 후부터 그때까지 우리 현대사의 문제점을 너무도 명확하게 지적해주셨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시기도 했다. 80년 서울의 봄 당시 김영삼씨와 협력하지 못하고 분열했는데, 그것이 결국은 군부세력에 빌미를 제공한 계기가 되었음을 인정하셨던 것이다. 그렇게 솔직하면서도 명철한 선생님의 얘기를 들을수록 내 가슴은 이상한 환희로 벅차 올랐다. 여태까지 잘못 살아왔다는 후회보다는 이제부터 정말 참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솟아올랐던 것이다.”


그리고는 박수석은 DJ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선생님 제가 잘못 살아왔습니다.”


조롱을 하기 위해 김대중 교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천박한 예이지만 교주가 직접 새 신자에게 몇시간 집중 면담 강의를 했다고 생각을 해보면 
박지원 의원이 그 때 받았을 충격, 이후의 사고 전환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읽는 이를 위해 요약하면

1. 1981년 박지원 의원이 교민환영위원장 자격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을 환영한 것과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훈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2. 나라사랑실천운동, 자유민주수호연합, 건국이념보급회 등 단체들은 1981년 박지원 의원이 KBS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는 전두환 대통령과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며, 12.12와 5.18은 영웅적인 결단이었다’라고 말했다”고 주장한다. 81년 KBS 인터뷰를 찾아보면 이 주장이 사실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3.1983년 박지원 의원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고 정치관을 바꾼다. 





+ 기타 

박지원 의원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조금 더 있다. 90년대 말 한국에 잠시 들어와서 들은 박지원 의원 관련 이야기는 이러했다. 박지원 의원이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을 끈질기게 쫓아다니면서 만나달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어찌나 정성으로 여러번 만나달라고 하는지 김대중 주필이 처음에는 거절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만나주었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접근방식은 이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의 대 언론 자세와 달랐다. 한국 언론사는 전통적으로 갑으로 대우받는데 익숙해있는데, 박지원 의원은 그걸 잘 아는 듯 했다. 싫다고 해도 일단은 계속 부딪쳐서 자기 공간을 만들어갔다고 들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자실 폐지로 인해 언론사와 각을 세웠던 것과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이것은 아마 사업을 했던 사람이라 그런 것은 아닌가 싶다. 

놀랍다. 단상

원 포스팅은 읽었다. 원 포스팅 안에 설익은 이해가 많아 포스팅에 댓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원전을 읽지 않고 쓴 리뷰에 대해서 코멘트하려면, 한편으로는 원전은 이러하다고 설명해 가면서, 한 편으로는 원전의 리뷰에 대해서 평가해야한다. 못할 짓이다.

- 책은 안보셨어도 리뷰는 쓸 수 있다는 오만함보다 더 놀라운 건, 오리지널 텍스트를 안 읽고 쓴 리뷰를 문제삼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 중에서 평소에 읽을 만한 포스팅을 올리는 블로거들이 있어서 놀라웠다. 

조중동매 방송 진출 기타등등



그래 좋으냐? 

유메의 최시중 방통위원장... 한 명은 반대발언 후 퇴장, 한 명은 불참하고 세 명으로 의결.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그 말을 다 하기엔
나는 너무 비겁하구나. 


국회의원으로서 해야 할 일

"“대통령께서 지난주 예산이 처리되던 날 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순방차) 비행기에 타시기 전에 직접 전화를 주셔서 ‘국회에서 예산이 처리되는 데 애써줘서 고맙다. 수고했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에 “국회의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 김성회 의원에게 이명박 대통령 격려전화, 헤럴드 경제의 기사를 경향신문에서 받아씀

국회의원으로서 해야 할 일 = 주먹질

노무현 차명계좌와 위협사격 명령에 대해 기타등등

-스누피- 시간남는 김에 사건의 증언드립도 친절하게 박살내드리죠.

오해를 피하기 위해 결론부터 간단히 말하면, 저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다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차명계좌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가, 알았다면 어느 시점에서 알았는가는 현재로선 미지수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차명계좌에 관해서는 이인규 전 중수부장의 중앙일보 인터뷰가 신빙성이 높다고 봅니다. 이 인터뷰에는 질좋은 정보들이 들어있습니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1) 수사 당사자이고, 2) 실명을 걸고 인터뷰를 했고, 3) 자기 발언에 대해 책임질 태세가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본인은 청문회에 나가려고 했었으며, 정보 청구를 하라고까지 하고 있고, 수사기록은 영구보존이므로 완전한 사실이 드러나는 건 시간문제라고까지 장담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터뷰의 경우는 정보의 신빙성이 높을 수 밖에 없지요. 

조현오 경찰청장의 발언은, 아닌게 아니라 여러명이 있는 자리에서, 실명을 걸고, 비디오 카메라 앞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홍만표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의 말에 따르면 조현오 경찰청장은 당시 검찰 수사상황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조현오 경찰청장의 발언은 이인규 전 중사부장의 발언과 비교해 정보의 질이 떨어집니다. 물론 두가지 정보가 가리키는 방향은 같지만 말이죠. 

캐안습님의 두번째 문제제기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만일 위협사격 명령을 내렸다면 민주당이 지금까지 조용히 있었을까, 하는 것이군요. 그런데 이 사건이 과연 민주당이 홍보하고 싶어할 만한 사건인가 의문입니다. 만약 한국이 한국 영해에서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에 위협사격을 한다면 1) 내무부 장관의 명으로, 2) 해양경찰청에 의해 위협사격하는 게 적절한 절차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연합뉴스 기사 내의 외교 관계자 코멘트는 적절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취재원의 질, 팩트, 견해 불평불만

산케이가 한일외교비사를 밝히다!! ㄷㄷㄷ

간략히 적습니다. 

취재원의 질(quality)

신문이 기사를 쓸 때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취재원을 필요로 합니다. 이 취재원들은 1) 익명인가 2) 실명인가에 따라 신뢰도가 달라집니다. 대개는 실명을 쓰면 신뢰도가 더 높아진다고 하겠지요. 제 3자가 이 기사를 역취재했을 때 똑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해서 익명의 취재원을 감수하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 1) 가끔 믿을 수 있는 취재원 2) 대부분 믿을 수 있는 취재원 3) 항상 믿을 수 있는 취재원 등으로 취재원을 나눕니다. 서양 신문의 경우에는 기사 내에, "가끔 믿을 수 있는 취재원에 따르면"이라고 취재원의 신뢰도를 적어주기도 합니다. 

한국 신문에서는 주로 "관계자에 따르면"이라고 적는 경우가 빈번한데, 이런 경우 제 3자가 취재원을 역취재했을 때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권장할 만한 방법은 아닙니다. 

취재원이 실명을 밝히고 취재에 응했을 경우, 1대 1인터뷰 보다는 공개 강연의 발언쪽이 더 공신력이 강합니다. 공개 강연에서는 여러 사람이 같이 발언을 듣기 때문이지요. 1대 1 인터뷰에서는 되도록이면 녹취를 남기는 편이 좋습니다. 가능하면 1대 1 인터뷰 보다는 취재하는 사람을 포함해서 기자가 두 명 정도 참관하는 편이 중요 발언을 기록할 때 바람직합니다.

문제가 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발언의 경우는, 1) 실명을 걸고 발언했고 2) 공개석상에서 발언했고, 3) 기자가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기 때문에, 정보의 신뢰성이 높습니다. 이런 중요발언의 경우에는 크로스 체크를 합니다. 다른 취재원에게 사실인가 확인을 해야지요. 링크한 기사는 원래는 연합뉴스의 기사인데, 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외교 관계자는 사실상 아무것도 확인을 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는 일본측 순시선과 물리적 충돌도 불사한다는 입장이었다."라는 내용을 통해, 맥락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고 있지요.

매체의 공신력과 매체의 이데올로기 성향에 대해 

매체의 공신력은 그 매체가 우파이냐 좌파이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매체가 전에 오보를 낸 적이 있는가? 오보를 냈다면 얼마나 악의적이었는가? 오보를 낸 후 정정보도를 냈는가? 이런 것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들은 매체가 우파성향을 갖고 있든 좌파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든 팩트를 수집함에 있어 차별을 두지 않습니다. 

게다가, 우파 성향의 매체를 정보수집에서 제외한다면, 정보를 수집할 매체가 대단히 줄어들게 됩니다. 월스트릿 저널, 팍스 뉴스, 워싱턴 타임즈, 일본의 산케이, 한국의 조중동을 제외하고 정보를 수집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한국에서는 경향과 한겨레를 좌파언론으로 보는 모양입니다. 경향은 독립언론이 된 역사가 짧고, 조직의 역사가 친재벌적이었기 때문에, 몇년 동안의 행적을 기반으로 좌파언론이라고 간주할 수 있을까하고, 저는 의심스럽게 보고 있습니다. 한겨레는 우리나라에서는 좌파언론으로 분류되는 모양이지만, 일본 언론에서 보기에는 민족주의 우파신문으로 간주합니다. 

팩트와 견해 

매체를 읽을 때 주의해야할 점의 첫째는, 팩트와 견해를 구분하고, 두번째는 팩트의 질을 봅니다. 팩트와 견해를 구분할 때는 기자의 견해와 기자가 취재한 팩트를 구분합니다. 예를 들어 링크한 내용을 봅시다. 

"교도통신과 도쿄신문은 한국 정부의 이같은 모습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강하게 반발해온 노무현 정권의 방향전환이라고 풀이했다.

산케이는 노무현 정권이 현재 내정·외교 양측면에서 모두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다며 한국 정부의 정상회담 재개 요청은 이런 현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기사에서의 팩트는 "노무현 정권이 복수의 외교루트를 통해 차기 총리가 확실시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에게 야스쿠니 신사 참배 자숙을 요청하면서 “한국은 미래지향의 관계를 위해 정상회담에 응할 용의가 있다” “(아베가) 언제든지 한국에 왔으면 한다”는 뜻을 타진해왔다" 라는 부분입니다. 

경향신문의 기사만 보아서는 이 팩트의 질이 좋은지 나쁜지, 취재원의 질이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없습니다. 노무현 정권이 복수의 외교루트를 통해 의견을 전달했다는 내용을 어떤 취재원이 전했는가가 이 기사에서는 나타나있지 않습니다. 이 기사의 크로스체크에서는, 일본측과 한국측 양쪽이 산케이가 보도한 팩트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산케이의 테크닉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 즉 견해를 암시하기 위해서 조그마한 팩트를 던져주고 자기들의 견해를 보탰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러면 캐안습님이 아래에 단 댓글에서 팩트는 무엇일까요. 

여기에서의 팩트는 "일본 정치인들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이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견해'(opinion)를 밝히고 있습니다. 

반면,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다쿠쇼쿠 대학의 심포지엄에서 밝힌 핵심 내용은 자기의 견해가 아닙니다. 자기가 독점적으로 알 수 있었던 사실(fact)이지요. 이 둘은 다릅니다. 이 팩트는 크로스 체크(누구인지 알 수 없는 관계자의 코멘트)를 통해 신빙성이 강화되진 않았지만, 이 팩트를 의심할 특별한 증언 역시 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건대 산케이가 이번에 보도한 내용의 팩트는 세카이가 보도하든, 아사히가 보도하든 달라지지 않습니다. 산케이가 보도했다고 해서 그 '정보'의 질을 폄하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다만 산케이 보도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생각해볼 만 합니다. 프로 신문쟁이들은 팩트를 가지고 거짓말을 하기 보다는, 의견과 팩트를 교묘히 짜넣어 독자로 하여금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게 하는 데 능합니다. 캐안습님은 노무현 정부가 왜곡언론이라고 했던 산케이인데 왜 그 보도를 신뢰하느냐고 의아해하는 것 같습니다만, 저는 산케이의 견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나, 그 신문이 보도하는 팩트는 가치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저 포스팅의 전제

거참 이상하단 말야.
 
두줄결론 - 
산케이신문의 보도로 저게 사실임을 증명하기는 역부족. 



산케이 신문은 극우신문이기 때문에, 산케이 신문이 팩트를 보도했다고 믿을 수 없다라는 건 어떻게 된 생각일까?

우파신문들은 대체로 거짓을 보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인가?

우파신문들이 보도하는 내용은 거짓말이란 전제를 저 포스팅은 깔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산케이는 우파신문이기는 하지만, '오바마가 사실은 외계인'이라는 기사를 싣는 그런 신문은 아니다.



P.S.: 내가 들은 게 옳다면, 경향신문 건물은, 경향신문이 전체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산케이에 세를 주기 시작한 건 이른바 독립신문 운운하기 한참 전부터의 일이다. 

왜 비난을 받느냐 하면 불평불만

아니 이런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 왜 비난을 받는지 모르겠습니다

학생의 학점은 지켜져야할 그 학생의 사생활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학생의 학점을 공개해도 처벌을 받지 않는 것 같은데, 미국에서는 교수가 학생 본인이 아닌 사람에게 학점을 공개하면 처벌받습니다. 학생이 미성년자라면 부모만이 교수에게 학점을 물어볼 권리가 있습니다. 반대로 학생이 성년이라면, 부모라 해도 교수에게 학점을 물어볼 수 없습니다. 성년이 된 학생이라면, 이 학생이 자기의 부모에게 자기 학점을 들여다 볼 권리를 부여해야만 가능합니다. 학생과 교수의 관계는 confidential한 것이기 때문에 학생의 학점, 그 학생에 대한 평가는 학생과 교수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대학교 강사 및 교수들을 매년 교육시키고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수업을 가르칠 수 있게 합니다. 한 번 시험 통과하면 1년간 유효함.

저 단멸교주님 기사에 붙어있는 'TV리포트'의 기사는 '한 언론'의 기사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언론'은 '마이데일리'지요. 이 기사는 마이데일리 특종입니다. 원래 기사는 보다 자세합니다. 


김연아는 지난해 이 과목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그의 성실성이 문제였다. 이 강사는 "김연아가 제출해야 할 과제는 2개였다. 당시 외국에서 전지훈련 중이었던 것을 감안해 훈련 모습을 담은 동영상과 짧은 리포트를 제출하라고 했는데 모두 이행하지 않았다. 다른 학생들과 동등한 기준으로 채점해 F학점을 줬다"고 밝혔다. 

학생을 지도하는 교수로서 느낀 아쉬움도 많았다. 이 강사는 "김연아와 김연아 에이전트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상업적인 CF 촬영에 쏟을 힘을 조금 덜어 김연아의 학업에 신경써야 할 때가 아닌가? 그런데 김연아는 수업에 참여하지도, 과제를 제출하지도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사전에 연락을 취하는 등 어떠한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 강사는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김연아에게서 두 줄 짜리 메일이 왔다. 열심히 해서 꼭 금메달을 따겠다는 내용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장문에 이메일로 답장을 보냈다. 보완해야 할 부분과 자세에 대한 조언, 격려 등 평소 전하고 싶었던 말을 담은 메일이었다. 그런데 그 메일을 받고도 김연아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처음 보낸 메일조차 과연 김연아가 보낸 것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였다. 만약 에이전트에서 보낸 것이 아니라면 내가 보낸 메일을 보고 답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진심을 담아 조언했다"고 전했다.

요는, 교수는 학점으로 말하는 겁니다. 기사로가 아니라. F를 날렸으면 교수로서 하고 싶은 말 다 한 것임. 그리고 그 학점의 권위에 대해서 학생들은 존중을 해줘야하지요. 그러나, 교수 역시 학점이라는 학생의 사생활을 지켜야합니다. "학업을 성실히 할 수 없으면 휴학하라"란 말은 김연아에게, 그리고 김연아에게만 말해야 합니다. 수많은 타인이 볼 수 있도록 언론사 기자에게 해서는 안됨.

하기야, 이것은 미국의 기준이기는 합니다. 미국에서는 개인주의와 학생의 권리에 대해 한국보다 좀 더 예민한 면이 있지요. 그러고보니 모대학교가 요즘 컨설팅 펌을 불러서 Globalization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학생의 권리에 대해서도 글로벌한 기준을 갖고 접근해야하지 않을런지요. 

신문업계 단상

신문사 중에 최종적으로 살아남는 신문이 뭔지 아나?

윗 글을 쓴 사람의 의견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신문업계가 사양산업인 이유는 1) 인터넷의 발달 2) 지하철 발행 무료신문때문이다.
2. 대형언론사는 시스템, 인력, 돈이 있기 때문에 기사차별화가 가능한데, 경향/한겨레는 기사차별화가 불가능.
3. 기사차별화 없이는 살아남기 힘들기에 조선일보는 TV로 뛰어듬 (???)
4. 한겨레, 경향이 조중동의 방송진출에 눈꼴시어 하는 이유는 다른 신문사들이 시장에 먼저 진출해서 선점효과를 누리는 것을 참지 못하겠다는 것.


1. 신문업계는 인터넷의 등장과 지하철 발행 무료신문 발행 이전에도 이미 사양산업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나우콤, 천리안 등에 의한 인터넷 접속서비스가 시작된 것은 1995년. 신문업계는 우리나라에 인터넷이 범용화되기 이전에도 이미 사양산업이었습니다. 지하철 무료신문은 신문업계가 사양산업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만, 지하철 무료신문이 출현하기 전에도 신문업계는 사양산업이었습니다. 시장 전체의 수요 성장률이 침체기에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으로 인해서 신문업계가 타격을 받은 것은 사실인데, 그것은 인터넷이라는 미디움 자체 때문이라기 보다는 포탈의 등장 때문입니다. 대중들이 포탈을 통해서 기사를 읽는 기사 소비패턴은, 최근에서야 많이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이전에는 여러가지 기사전달 웹사이트들이, 내가 혹시 패권을 장악할 수 있으려나 하는 꿈을 꾸었지요. 지금은 중앙일간지들이 그저 일간지로 보이겠지만, 인터넷이 막 대중화되던 시점에는 신문사 하나하나가 혹시 이 인터넷이란 게 우리 신문사를 왕비로 만들어주지 않으려나 하는 신데렐라의 꿈을 꾸고 있었답니다. 

한편 이렇게 일간지들이 꿈을 꾸고 있는 동안, 일부 포탈은 컨텐츠 확보를 위해서 조그만 업체(예를 들어, 신생 오프라인 잡지나 출판사)들의 컨텐츠를 무단 점유하고 배째라 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제 선배 중 한 명이 바로 오프라인 잡지를 야심차게 시작했었지요. 꽤 수익이 잘 났었는데, 온라인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포탈들이 돈도 지불하지 않고 컨텐츠를 마구 퍼가서, 독자적 온라인 잡지를 만들겠다는 꿈을 접고 손털고 나갔습니다. 요즘은 이런 전국시대가 어느정도 정리가 끝났고, 포탈 간의 순위가 분명해서, 포탈들은 자기 나름대로 공급자 분석(contents provider)을 끝낸 상태입니다. 포탈 A는 "연합만 있으면 된다"라는 분석을 끝냈다고 알고 있는데, 처음부터 '공급자는 연합만 있으면 되는' 상태로 포털들이 먹기 좋게 산업의 모양새가 되어있던 건 아니었답니다. 

글을 쓴 킹오파님은 일반 포탈과 무료신문들의 내용이 일반 신문사와 별 차이가 없다고 하시는데, 포탈들은 일반 신문사들의 기사를 그대로 가져다 쓰죠. 차별화가 없는 것이 아니고 같은 상품입니다. 

우리나라 신문사들이 통신사를 이용한 것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예전에는 인터넷이 없었기 때문에, 통신사 전용 단말기를 이용하거나, 통신사 전용 단말기를 이용하기 전에는 통신사에서 아침저녁으로 갱지에 프린트해서 보내주는 통신문을 썼습니다. 통신사, 혹은 타사가 먼저 쓴 기사를 이리저리 돌려 다시 쓰는 것을 우라까이라고 부르지요. 신문업계에서는 보까시나 우라까이, 하리꼬미 등 일본 용어를 종종 쓰는데, 이는 일제시대의 잔재입니다. 고쳐쓴다는 업계 용어가 따로 있을 정도이니 통신사 기사를 받아쓰는 게 최근의 일이 아니란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더 심한 일도 있었는데, 요즘은 연합이라고 바이라인이라도 넣어주지만, 옛날에는 아주 조금만 기사를 그 신문사 기자의 이름을 넣는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대중들에게 이런 일이 눈에 뜨이는 일이 적었습니다. 첫째 연합통신 단말기나 배달 갱지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아주아주 극소수였기 때문이고, 둘째는 대중들이 이렇게 신문들을 비교하면서 읽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의 purchasing power가 지금에 비해서 낮았고, 이걸 두 세개씩 비교하면서 본다는 것은 지금보다 어려웠습니다. 통신사 기사 받아쓰기는 예전에도 있었는데, 다만 대중들이 눈치채지 못했을 뿐입니다. 예전에는 신문 지면도 겨우 16면에 불과했고, 지금처럼 지면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취재기자들이 그렇게 많은 기사를 써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신문 지면이 이렇게 많아지게 된 것은 중앙일보의 섹션신문 붐이 계기가 되었다고 봐야겠지요.)

2. 대형언론사가 시스템, 인력, 돈으로 1990년대부터 힘을 쏟은 것은 기사차별화가 아니라, 판매망(distribution channel) 선점이었다. 

신문업계는 다른 업계와 비교하여 공급 채널의 고정비용(fixed costs)이 높습니다. 하나의 동 단위에 신문을 공급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동에 한 명의 독자가 있으나, 천 명의 독자가 있으나, 보급소는 하나입니다. 따라서 신문을 보급하는 입장에서는, 아파트는 신문 보급이 쉽고, 산동네는 보급이 어렵습니다. 서울은 보급이 쉽고, 지방은 보급이 어렵습니다. 80년, 90년대 신도시 아파트, 한강변 아파트의 등장은 일부 신문사에게 엄청난 잇점을 주었습니다. 아파트 동 하나만 선점하면 산동네 몇 구역 보급하는 것보다 나으니까요. 아파트는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오면서 하나하나 넣기만 하면 됩니다. 산동네와 달라서 수금률도 좋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파트를 선점하느냐. 

돈을 쓰면 되지요.

그래서 조중동을 비롯한 신문사들은 돈을 씁니다. 부수를 늘려야 고정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이지요 (fixed costs가 부수로 나누어지니까). 당시에 영업사원이 신문 한 부를 확장하면, 영업사원에게 한 부 당 2만원 정도 주었습니다. 영업사원 중에서는 이렇게 부수를 확장해서 빌딩을 산 사람도 있었을 정도니까요. 또, 독자들에게는 자전거나 비데, 기타 상품을 주었습니다. 신문구독비를 받지 않아도 신문을 1년 정도 무료로 넣어주기도 했습니다. 영업사원에게 2만원, 독자들에게 5만원 상당의 상품, 기타 비용 해서 신문 한 부를 확장하는데 약 10만원 정도 비용이 들어간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이는 불공정 거래에 해당합니다. 이 판은 돈 먹고 돈 먹기란 표현이 딱 맞습니다. 돈 있는 놈이 아파트를 선점할 수 있고, 한 번 아파트를 선점하면 이 판에서 이깁니다. (약간 옆으로 이야기가 새는데, 대한민국의 보수화는 대규모 아파트 건축- 신문의 부수 확장 - 부동산 값의 상승, 이 셋이 맞물려 갔다고 생각합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조중동의 부수확장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다치기도 했습니다. 조선과 동아일보의 지국장과 판촉요원이 싸우다 폭력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경향신문은 당시에 한화라는 물주가 있었기 때문에, 뻐꾸기 시계를 주고 독자들을 끌어옵니다. 한겨레는 돈을 이용한 불공정 확장경쟁을 감당할 재력이 없었습니다. 한겨레는 뒤늦게 물량공세를 통한 확장경쟁에 뛰어들기는 했지만, 재력면에서도 딸리려나와 한겨레까지 이런 불공정 거래에 뛰어드느냐는 지적에 체면만 구기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조중동이란 서열이 당연시 여겨지는 분위기인 듯 한데, 예전에는 한국일보가 신문업계의 1위로 간주되던 때도 있었습니다.  중앙일보의 엄청난 물량공세과, 거기에 지지 않는 조선일보의 물량공세에, 한국일보의 판매망은 꽤 타격을 입었었지요. 능력있는 보급소 소장들이 돈을 더 많이 주는 중앙일보로 옮겨갔으니까요. (한국일보의 부진은 그러나 한국일보 자체의 잘못된 결정에 많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조석간 동시 발행이라는 악수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세계일보의 경우는 해외에서 온 통일교 신도들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배달원 조달에 있어 여유가 있었습니다. 

3. 기사차별화 없이는 살아남기 힘들기에 조선일보가 TV로 뛰어든 게 아니다. 

만일 기사차별화 없이는 신문업계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게 원인이라면, 킹오파님 말에 따르면 가장 차별화가 되어 있는 조선일보가 왜 TV산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겠습니까?

방송업계 진출은 조선일보 패밀리와 중앙일보 패밀리의...(아무리 분리가 되었다고 하지만...어느 가문인지는 다들 아시겠고..) 오랜 숙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설로는 동양방송 뺏기고 절치부심했다고 하지요. 중조중동이 왜 방송에 뛰어들려고 하는지는 잘 아시겠고...첫째는 수익률이 낫다는 이유고, 둘째는 매체 영향력이 높아진다는 이유고, 세번째는 컨텐츠를 돌려 쓸 수 있다는 이유지요. 

4. 한겨레, 경향이 조중동의 방송진출에 눈꼴시어 하는 이유는 다른 신문사들이 시장에 먼저 진출해서 선점효과를 누리는 것을 참지 못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선점효과는 이미 MBC, KBS, SBS가 누리고 있는데, 무슨 조중동이 선점효과를 누린다는 것인지... 에휴.

한겨레가 신문-방송 겸업금지에 대해 기사를 쓰는 이유는 여론장악력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 나라의 여론을 하나의 언론사가 좌지우지 할 수 있다면, 언론의 감시기능이 떨어진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다른 상품과는 달리, 언론사는 공기(公器)로서의 역할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쿠오트 그대로 기억은 못합니다만...)...92년인가... 조선일보가 일국의 대통령 후보는 쌀가마 하나 정도는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글을 기사인가 사설로 써냈습니다. 바로 그 즉시, 대선후보들이 줄줄이 나는 쌀가마 들 수 있다, 나는 아직 그 정도 체력이 된다, 라고 연설 중에 주장했고, 심지어 한 후보는...이회창인가 이인제 후보였던 것 같은데...쌀가마를 들어보이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건 신문이 아니고, 숨어있는 정부나 마찬가지인 영향력이지요. 퍼핏 마스터랄까요. 지금도 이렇게 강력한 영향을 자랑하는데 신문-방송 겸업을 한다면 어느 정도일까 짐작도 잘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향력이 조선일보가 기사차별화를 잘했기 때문일까요? 

물론, 조선일보의 데스킹 능력이나, 에디팅 능력 역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건 왜 그러냐 하면, 일단 조선일보 데스크 (기사 방향 정하는 중견기자)들이 잘나서 그렇습니다. 데스크가 잘나면 아래 기자들을 잘 부려먹을 수 있지요. 조선일보는 타사에서 일 잘한다고 소문난 중견기자들을 잘 스카웃하기로 유명합니다. 이들은 돈을 많이 준다고 하니까 친정 버리고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job security가 보장된 공채출신과는 달리, 실력을 보여줘야 살아남습니다. 또, 공채출신들도 타사에 비해 긴장들 많이 타고 있고, 팽팽하게 일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중동의 현재의 영향력은 압도적인 자본투입의 결과물입니다. 엄청난 자본투입이 있었기 때문에 판매망을 선점할 수 있었고, 엄청난 자본투입이 있었기 때문에 지면 확장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지요. 조중동의 특징은 기사차별화가 아닙니다. 돈이 많다는 것입니다. (동아일보는 자금력 면에서 아슬아슬했지만,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의 주식투자 대박과, 부동산 투자로 인해 벼랑끝에서 구원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때 대박 시즌의 기사는 아닙니다.)

좋은 기사, 차별화되는 기사를 쓰면 구독 부수가 높아지고, 구독 부수가 높아지면 돈이 많이 벌리겠지, 라고 생각하는 건, 헛된 꿈입니다. 한겨레 같은 경우는 좋은 기사를 써서 고맙다고 구독 부수가 올라가면 속으로 울었습니다. 산동네 독자가 좋은 기사 감사한다며 구독한다고 부수 하나 늘려주면, 그 독자 하나를 위해서 그 동네 판매망을 설치해야합니다.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수지타산이 맞으려면, 이런 출혈을 감수하면서 어떤 임계점을 통과할 때까지 기존 판매망 안에서 '촘촘히' 독자를 늘려야합니다. 

게다가, 대중들은 좋은 기사보다, 제목이 선정적이고 내용이 섹시한 기사를 원합니다. 길고 내용있는 기사, 심층취재 기사를 써보았자, "좋은 글이군요 읽지는 않았습니다"라는 반응이 나올 뿐입니다. 독자들은 "소녀시대 벗었다" (드라마에서) 라는 기사를 더 많이 클릭할 것입니다. 그래서 조선일보가 이른바 제목 장사를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제목 보고 클릭했는데 클릭하고 보면 연합하고 그다지 다르지도 않은 기사가 나오는 거지요. 

결론을 지어야겠는데...

조중동이 방송으로 진출했으니, 자본에 의한 미디어 장악이 가속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대중들은 정보를 공짜로 소비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공짜로 보아온 기사의 댓가로 정치, 경제, 사회적 이권을 뺏기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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